바라보기, 언어, rondo, 론도 훈련, 축구, Johan Cruyff, 요한 크루이프
#바라보기, 언어, rondo, 론도 훈련, 축구, Johan Cruyff, 요한 크루이프
요한 크루이프가 만든 훈련법으로 훈련할 때 뛰는 게 너무 싫어서 고안했다고 한다.
다수가 소수를 둘러싼 형태에서 테두리에 위치한 선수들이 서로에게 공을 돌리고 그 안에 위치한 선수들은 그 공을 빼앗으려 압박하는 훈련법이다.
기본적인 틀은 상대의 압박이 들어오기 전에 빠르게 볼을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지만 외곽과 내부에 몇 명의 선수를 두느냐, 그리고 간격의 넓이는 어느 정도로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부분전술을 학습할 수 있는 훈련이다.
주로 크루이프즘을 이어받아 점유율을 중시하는 바르셀로나같은 구단들이 중점적으로 행하는 훈련이었지만 현대축구가 점점 더 압박의 밀도가 격해지면서 모든 선수가 빠른 볼 처리 능력을 갖출 필요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현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의 구단이 론도를 훈련의 필수항목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후방 빌드업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키퍼의 볼 처리도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에 위 영상의 55분 30초경의 장면처럼 골키퍼가 론도 훈련에 참여하기도 한다.
론도 훈련과 비슷하게 가운데에 사람을 앉혀놓고 주위로 둘러서서 공을 차서 전달하는 놀이가 있다. 주로 학교 체육시간에 자유시간이 있을 경우 하는 놀이로, 론도 훈련에 비하면 족구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이 놀이를 일컫는 이름은 하나로 정해져있지 않으며, 지역에 따라 왕따축구, 살인축구 등으로 불린다.-나무위키
론도, rondo
명사음악
1.프랑스에서 일어난 2박자의 경쾌한 춤곡. 합창과 독창이 번갈아 되풀이됨.
2.주제가 동일한 상태로 여러 번 되풀이되는 사이에 다른 부주제가 여러 가지로 삽입되는 형식의 기악곡. 회선곡(回旋曲).
론도(영어: Rondo, 프랑스어: Rondeau 롱도[*])는 주제가 삽입부를 사이에 두고 반복하여 나타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곡이다.
론도 형식은 바로크 시대의 리토르넬로 형식에서 발전된 것이다. 엄밀한 의미의 론도 형식은 7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어, 'R-E1-R-E2-R-E1-R'의 형태를 이룬다. R은 주제(론도)를, E는 삽입부(에피소드)를 뜻하는 약어이다. 즉 주제는 원칙적으로 같은 조성으로 4회 반복되며, 그 사이에 3개의 삽입부가 끼워진다. 이것은 론도 형식이 17세기의 론도-(A-B-A-C-A-D…A)의 삽입부(B, C, D,…)를 3개로 줄이는 데서 생겼다고 하는 역사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 밖에도 R-E1-R-E2-R이라는 5부분으로 된 론도 형식이 자주 보인다. 앞에 든 7부분으로 된 론도 형식에서는 3개의 삽입부 중에서 맨 처음과 셋째는 대략 같은 재료로 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전체는 E2를 중심으로 하여, 전후에 대칭적인 형으로 된다.
론도 형식은 때때로 고전파의 소나타나 교향곡, 협주곡 등의 화사한 종악장으로 쓰이는데, 그와 같은 론도의 대부분의 주제는 흐르는 듯한 가벼움과 쾌활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대개는 알레그로의 템포로 되어 있다. 한 예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 13 《비창》의 종악장에서 주제와 각 삽입부의 첫머리를 인용한다. 또, 론도 형식은 흔하지는 않지만 성악곡에도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 예시로는 크리스토프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의 아리아 <에우리디체 없이 어떻게 할까?>가 있다.-위키백과
Johan Cruyff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의 前 축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앙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현역 시절, 클럽에서는 토탈 풋볼의 아버지 미헬스 감독이 이끄는 아약스의 야전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1971-72 시즌 트레블[5]을 포함해 유러피언컵 3연패와 에레디비시 8회 우승을 이끌었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해서는 14년 만의 라리가 우승을 달성했다.[6] 국가대표팀에서도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미헬스의 토탈 풋볼을 구현하고 준우승을 일궈냈다. 또한 발롱도르를 세 차례 수상하며, 플라티니, 반 바스텐과 동률을 이루고 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구단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과 라리가 4연패를 이끌었으며, 라 마시아를 개편하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도입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바르셀로나식 축구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그가 선수 시절 아약스에서 달았던 등번호 14번은 아약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나무위키
루이프와 그의 스승 리누스 미헬스는 오늘날 토탈 풋볼이라 불리는 개념을 유행시킨 인물이다. 미헬스가 개념을 정리했다면 크루이프는 이를 실제 경기장에 구현해내며 찬사를 받았다.[26]
헌데 사실 토탈 풋볼이라는 풍조를 요한 크루이프나 미헬스 감독 둘이서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아약스 시절 이전에도 토탈 풋볼의 흔적을 볼 수 있는 흐름은 있었다. 1950년대 4년간 A매치 32연승이라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무적의 매직 마자르 헝가리는 경기 중에 유기적인 포지션 변경으로 황금색 바람을 일으켰고,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마슬로프는 압박과 4-4-2를 이용해 토탈 풋볼로 이어지는 여러 개념들을 앞서 선보였으며, 독일의 공격적인 수비수 프란츠 베켄바워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도 카테나치오를 개량해서 스위퍼를 리베로 개념으로 운용하기 시작했고,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오늘날도 역대 최강 팀이라는 칭호를 듣는 유기적인 미드필더진을 구축한 바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토탈 풋볼을 완성시키고 축구계 전반으로 유행시킨 리누스 미헬스나 요한 크루이프의 위대함이 빛 바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두 사제지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들이 없었다면 토탈 풋볼은 오늘날 축구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두 사람과 당시 AFC 아약스,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부터 현대축구가 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담으로,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대를 이어 토탈 풋볼의 싹이 키워지고 있던 반면, 잉글랜드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킥 앤 러시 전술이 대세를 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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