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정준희의 논] 밤이 선생이다ㅣ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교양, [정준희의 논] 밤이 선생이다ㅣ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기억이 두터운 자만이 현재를 온전히 살아낸다
고(故) 황현산 교수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정준희의 지적 사유
기억이 두터운 자만이 현재를 온전히 살아낸다
고(故) 황현산 교수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정준희의 지적 사유
말과 글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거칠어지는 삭막한 시대, 우리는 왜 어둠의 입을 빌려 더듬거리며 사유해야 하는가. 문학적 감수성과 사회적 윤리가 만나는 가장 순결한 사유의 궤적을 짚어봅니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 생각들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존경받고 사랑받아야 할 내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그리워했다."
더듬어 빚어내는 언어와 '정직한 수사법'의 본질
현대 사회의 소통 양식을 관찰할 때 목격하게 되는 가장 뼈아픈 징후는, 내면에 깊이 축적된 사유와 성찰도 없이 그저 겉도는 입술만을 분주히 놀리는 ‘말의 홍수’와 ‘언어의 인플레이션’입니다. 소셜 미디어와 즉시적 여론전이 지배하는 담론장에서는 자극적인 구호와 즉물적인 배설만이 횡행합니다. 이러한 소음 속에서 고(故) 황현산 교수의 첫 문장은 문필가이자 지식인으로서 언어를 다루는 자의 근원적인 윤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서늘하게 일깨웁니다.
황 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선명하게 본다거나 단숨에 파악한다고 하지 않고, 굳이 ‘더듬어내어’라는 지극히 촉각적이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생각과 언어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으면서도 결코 동일체가 아닙니다. 인간의 머릿속과 마음결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상념은 때로는 안개처럼 막연하고, 때로는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 가능한 정교한 기호의 체계로 옮겨내는 일은 어두운 심연 속에서 손끝으로 사물의 윤곽을 하나씩 더듬어 확인하고 다시 다듬어 빚어내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입니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도구가 바로 언어이며 그것을 다루는 수사법(Rhetoric)입니다. 근대적 합리주의나 실증주의적 시각에서 수사학은 흔히 진실을 가리거나 왜곡하는 공허한 겉치레, 화려한 말장난으로 오해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준희 교수가 지적하듯, 진정한 수사법이란 결코 허식이 아닙니다. 언어는 사물과 생각을 1대 1로 온전히 박제해 담아낼 수 없기에, 주관적 내면을 상대방의 또 다른 주관적 세계와 공명시키기 위한 ‘공통 감각(Sensus Communis)’의 통로가 절실합니다. 본질에 닿기 위해 마련된 섬세한 우회로이자 단절된 차원을 이어주는 포털, 그것이 바로 그가 강조한 ‘정직한 수사법’의 본래 의미입니다.
단순한 문장 장식이나 궤변이 아닌, 파편화된 주관적 내면의 생각을 타인의 심장에 가닿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사물의 참모습에 닿기 위한 가장 겸손하면서도 치열한 사유의 우회로를 뜻합니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향한 향수, '그리움'의 철학
황현산의 문장에서 독자의 마음을 가장 강렬하게 뒤흔드는 단어는 바로 "그리워했다"는 서술어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바랐다"거나 "투쟁했다"고 하지 않고 "그리워했다"고 썼습니다. 일상적인 어법에서 그리움이란 과거에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상, 상실된 시공간을 애타게 회고할 때 발현되는 정서입니다.
그렇다면 인류 역사상 모든 구성원이 온전히 자유롭고 평등했던 황금시대가 실존했던 적이 있었을까요? 역사적 실재로서 그런 유토피아는 우리 역사에 단 한 번도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상향을 향해 과거형의 감정인 '그리움'을 투영합니다. 이는 그리움이라는 정서가 단순히 흘러간 과거의 박제된 기억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과 궁극적 지향(희구, 希求)을 견인하는 창조적 역동성을 지니고 있음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삶의 국면에서 연대의 온기, 환대의 기쁨, 온전한 평등의 순간을 아주 찰나의 파편으로나마 경험하곤 합니다. 그 파편적 체험들이 영혼 속에 잠재태(Potentiality)로 남아 응축되고, 그것이 가능태를 거쳐 현실태(Actuality)로 피어나길 꿈꾸는 정신적 도약, 그것이 황현산이 규정한 '미래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정준희 교수는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분노와 냉소, 패배주의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정서를 '성찰과 그리움'으로 승화시키는 문학적 구원의 힘이라고 짚어냅니다.
"꿈은 과거의 체험을 토대로 길어 올려지지만,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통해 그 조각들을 재조합해 내는 최대치의 상상력이다." 과거의 조각을 엮어 미래의 이상향을 그리워할 때, 현재의 척박한 현실을 버텨낼 윤리적 힘이 태동합니다.
사회과학의 오만과 한계, 그리고 문학적 사유의 회복
강연자인 정준희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1980~90년대 대학 시절과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사회과학과 구조주의적 체계 이론에 심취했던 연구자로서, 그는 감성적인 에세이나 문학적 수필을 '엄밀하지 못한 상념'으로 치부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습니다. 계량화된 통계, 정교한 논리 모델, 거시적 인과관계로 사회의 병폐를 완전히 규명하고 혁명적 대안을 도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연구실 밖의 사회는 이론 모델보다 훨씬 거대하고 예측 불가능했으며, '설명된다'고 확신했던 영역 뒤편에서 무수히 많은 미지의 변수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정책과 제도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고, 가장 중요한 주체인 '인간'이라는 존재는 합리적 선택 이론 따위로 규정할 수 없는 오묘하고 다면적인 심연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고색창연한 속담이 연구자의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온 인식의 대전환, 이른바 '아하 모멘트(Aha-Moment)'였습니다. 엄밀한 과학주의 관점에서는 비논리적이고 입증 불가능한 모순 덩어리로 보였던 문학과 예술의 언어 속에,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살아가게 만드는 궁극의 진실과 삶의 지혜가 농축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학의 최고 권위자였던 황현산의 산문집은 그에게 사회과학의 차가운 뼈대에 문학적 살과 피를 채워 넣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 구분 | 사회과학적 접근 (체계 이론) | 문학적·미학적 접근 (황현산의 사유) |
|---|---|---|
| 인식의 도구 | 실증적 데이터, 계량 통계, 제도적 메커니즘 | 촉각적 언어, 메타포, 정직한 수사법, 상징 |
| 인간관 | 합리적 행위자, 계급적 주체, 구조의 구성요소 | 복합적 감정, 역사와 기억의 총체, 모순적 심연 |
| 시간의 인식 | 선형적 진보, 과거-현재-미래의 분절 | 두터운 현재 (과거의 고통과 미래의 이상이 중첩됨) |
| 담론의 지향점 | 현상의 인과적 규명 및 제도 설계 | 공통 감각의 회복, 기억의 보존, 도덕적 환대 |
예술의 비스듬한 궤적과 상실의 불안: '겨울의 개'와 '빈집'
황현산의 문예 비평적 혜안이 절정에 달한 지점은 사진작가 강운구의 사진들을 매개로 시인 기형도, 화가 에드워드 호퍼, 영화감독 김기덕의 예술 세계를 유기적으로 교직해 내는 대목입니다. 1973년 전북 장수군 수분리 마을의 설경을 담은 사진을 다룬 에세이 「겨울의 개」에서 그는 놀라운 시선 포착을 보여줍니다.
눈 쌓인 산골길, 아낙은 머리에 무거운 물동이를 이고 소년은 쏟아지는 눈발을 막으려 외투를 치켜들며 앞으로 바삐 걸어갑니다. 프레임 안의 모든 사람과 사물은 수직으로 곧게 선 채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전진하지만, 오직 프레임 우측의 자유로운 개 한 마리만이 비스듬히 가로방향으로 걸어갑니다. 황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의 본질을 길어 올립니다.
"개는 내내 주인을 따라가지만 언제나 주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
정준희 교수는 이에 더해, 사진 속 인물들이 길을 걸을 때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있음에 주목합니다. 얼핏 직선으로 뻗은 듯 보이는 삶의 길이란 사실 구불구불한 곡선의 연속이며, 코너를 도는 자동차가 원심력을 이겨내기 위해 몸체를 기울이듯 우리 범부들 역시 거친 생의 곡선 주로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달리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한편, 충북 제천의 폐가 창호지 문에 굵은 나무판자를 대고 대못을 박아둔 사진을 다룬 에세이 「빈집」에서 황 교수는 상실과 공포의 본질을 파고듭니다. 가난한 집주인이 떠나며 가재도구는 짊어지고 갔을지언정, 두고 온 기억의 시간들을 보호하기 위해 박아 넣은 대못. 그는 이 처연한 광경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과 대비합니다. 호퍼의 그림 속 텅 빈 방은 아예 인간의 온기나 삶의 흔적조차 거세되어 있어 차라리 무감각한 적막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한국 시골의 빈집은 '기억의 수호신'들이 여전히 깃들어 있기에, 앞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이 확실하다는 불안을 야기합니다.
이미 사라져 버린 과거는 슬픔을 주지만, 아직 잔여물이 위태롭게 남아 있어 머지않아 완전한 파멸과 망각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태는 영혼을 갉아먹는 '실존적 공포'를 안깁니다. 근대화의 폭력 아래 허물어지는 원주민촌과 철거의 현장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회 비평과 도덕적 결기: "윤리는 기억이다"
황현산의 붓끝은 상아탑 속 순수 문학의 정원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 1월, 한겨울 칼바람 속에 자행된 용산 참사(용산 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참사)를 목도하며 그는 권력과 자본의 야만성을 향해 준열한 분노의 필초를 겨눕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철거민들과 경찰관들의 비극 앞에서 국가 권력과 개발 주체들은 무감각했고, 사건을 서둘러 은폐하고 지워버리기에 급급했습니다.
이에 맞서 전국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 192인이 모여 작가 선언을 발표하고 현장에서 붓을 들었을 때, 황현산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진한 슬픔과 상처가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연대의 당위성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참극의 현장이 세련된 유리 타워와 초고층 상업 지구로 뒤덮이고 나면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번영 밑바닥에 깔린 피와 눈물을 잊은 채 '부끄러움조차 알지 못하는 괴물'로 전락할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오늘날 도심 곳곳의 화려한 재개발 이면에서 우리는 그 불길한 예언이 섬뜩하게 적중했음을 목도합니다.
📌 기억술(Mnemonic)로서의 예술과 윤리
"시는 기억술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예술은 왕성했던 생명과 순결했던 마음, 좌절과 패배와 분노의 감정, 가장 고양된 순간에 품었던 희망을 기억하고 현재에 용솟음치게 하는 아름다운 방법이다. 기억이 없으면 윤리도 없다. 예술의 윤리는 규범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순결했던 날의 희망과 좌절을 잊지 않게 하는 데 있다."
‘부자 되세요’라는 탐욕의 구호가 지배하던 시대, “시가 밥 먹여 주느냐,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냉소하는 물신주의를 향해 황 교수는 전남 신안 고향 마을의 '장옥이 각시' 일화를 꺼내 듭니다. 청상과부로 홀로 시부모를 봉양하며 고단한 노동 속에 산에 올라 낯 뜨거운 음담과 절절한 한이 뒤섞인 민요를 부르던 여인. 양반과 유림의 규범으로 볼 때 점잖지 못하다며 노래를 금지해야 할지 고민하던 마을 이장에게, 귀가 어두워진 최고령 노인은 묵직한 가르침을 남깁니다.
"내가 귀가 먹어서 그러는데, 장옥이 각시가 노래는 잘 부르는가?"
"아, 노래야 일품이지요!"
"그렇다면 됐네. 마을 사람들이 나처럼 귀먹기 전에, 그 좋은 노래 실컷 많이들 들어두라고 하게."
엄숙주의적 도덕률과 자본의 효율성을 단숨에 뛰어넘는 민중의 미학적 지혜입니다. 인간의 극한적 고통을 예술적 파동으로 승화시킨 그 소리를 온전히 들어주는 일이야말로 공동체가 지녀야 할 진정한 연대이자 살아있는 윤리라는 웅변입니다.
토속적 기억과 근대의 망각: 소금 맛을 구별하던 '귀신'들의 세계
황현산의 문학적 자양분은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낸 전라남도 신안군의 외딴 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6·25 전쟁 피란 시절 업혀 들어갔던 그 작은 섬마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에게 우주의 중심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뭍에서 흘러들어온 낯선 서구 문명의 산물인 '사이다'를 보리쌀과 맞바꿔 마시고는, 탄산의 강렬함에 취해 백사장에 쓰러져 자정 넘도록 잠들었던 일화에서 그는 "시간이 바닥에 낮게 깔려 있었다"는 기막힌 시적 표현을 끌어냅니다.
그 기억의 지층 속에는 바닷물을 끓여 만들던 전통 '화염(소금)'과 이를 넣어 간을 맞추던 멀건 팥죽 '온니죽'의 풍미가 배어 있습니다. 천일염이 보급되면서 화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맛의 미묘한 결을 오롯이 분별해 내던 외할머니의 부고와 함께 황 교수는 "온니죽의 참맛을 기억하는 거룩한 혀 역시 이 세상에서 영원히 퇴장했다"며 비통해합니다.
하지만 그 섬의 어른들은 여전히 놀라운 감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소금 한 알갱이만 혀끝에 얹어도 그것이 섬의 동쪽 염전에서 거둔 것인지 서쪽 염전의 것인지, 초여름 뙤약볕의 소금인지 늦가을 서늘한 바람의 소금인지를 귀신같이 알아맞혔습니다. 황현산은 이를 두고 자연과 인간이 내통하던 거룩한 경지라 칭송합니다.
🌾 전통적 교감의 상실과 탈신비화(Entzauberung)
"한때 이 땅에는 그런 귀신들이 참 많았다. 안방에는 술을 빚는 귀신이, 건너방에는 메주를 띄우는 귀신이, 부엌에는 조왕신이, 변소에는 측신이 있었다. 그 신들은 인간과 숨결을 나누고 체취를 교환하며 운명을 함께했다. 그것은 고독한 인간의 육신을 우주 삼라만상과 이어주던 연결망이었다."
서구식 근대화, 규격화, 자본주의적 산업화는 이 다정한 귀신들을 '미신'이라는 낙인을 찍어 일거에 몰아내는 데 가장 능한 괴물이었습니다. 사물과 인간, 자연과 영혼 사이의 신성한 소통 통로가 차단되면서, 현대인은 풍요 속에서 극단적인 고립과 고독의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우체국 창구를 뛰어넘던 청년, 그리고 '두터운 현재'의 무게
황현산의 문체가 지닌 서정성 이면에는 불의와 억압에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활화산 같은 저항 정신이 내재해 있습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 치하 시절, 외국 학술 서적 한 권을 수령하기 위해서조차 온갖 사상 검열과 국가기관의 모욕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우체국의 말단 창구 직원마저 권력의 하수인(마름) 노릇을 하며 학문을 추구하는 청년의 자존심을 짓밟고 조롱하던 어느 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황현산 청년은 우체국 창구의 가로대를 훌쩍 뛰어넘어 포효했습니다.
"내가 공부를 하겠다는데, 국가가 도대체 왜 방해를 하느냐!"
이 청년기의 일화는 훗날 유신 독재의 폭압과 피눈물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조국 근대화의 영웅'이라 찬양하며 경제적 과실만을 탐식하는 후대 청년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속에서 창구를 다시 뛰어넘고 싶은 격정으로 되살아난다고 토로합니다. "과거는 바로 그렇게 착취당한다"는 그의 경구는 서늘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보자기만 한 찰나의 시간만이 현재이지만, 깊은 역사적 사유를 품은 사람에게는 수백 년 전 조선 시대 이름 없는 노비들이 겪었던 참혹한 고통마저도 바로 지금 숨 쉬는 현재입니다. 과거의 슬픔과 미래의 갈망을 현재의 시간 속에 두텁게 품어 안을 때, 비로소 인간은 기만적인 망각과 권력의 횡포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 윤리를 획득합니다.
책의 표제인 『밤이 선생이다』의 진정한 의미 또한 여기에 맞닿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소란스럽게 작동하고 이권이 부딪히는 대낮의 세계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자아를 소모합니다. 그러나 혼자가 되어 어둠과 대면하는 깊은 밤, 우리는 상실했던 자아를 되찾고 침묵의 입을 통해 새로운 미래의 언어를 숙성시킵니다. 어둠을 스승 삼아 벼려낸 정직한 언어야말로, 거친 시대를 버텨내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무기입니다.
문학평론가 故 황현산 교수의 산문집을 통해 잘 벼려진 말과 글의 가치를 성찰하는 인문학 명강의 전편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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