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탁현민의더뷰티플] ★새 코너★ 경제적 시점으로 세계를 보다 with 차영주 |양다솔x신동호 알베르 까뮈 '이방인' | 문성근 모셨습니다| 다시 202회
#인생, [#탁현민의더뷰티플] ★새 코너★ 경제적 시점으로 세계를 보다 with 차영주 |양다솔x신동호 알베르 까뮈 '이방인' | 문성근 모셨습니다| 다시 202회
지정학적 경제 위기부터 카뮈의 부조리와 문익환의 시대정신까지
탁현민의 더 뷰티풀 202회 완벽 분석 아카이브
유로존 2위 경제대국 프랑스의 재정 파탄과 트럼프의 알래스카 70조 원 LNG 청구서, 하늘을 나는 테슬라와 가자지구의 4천만 원짜리 당나귀,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1·2부 법정 사법 카르텔 해부, 그리고 늦봄 문익환 목사의 초극적 삶과 1억 원 창작 희곡 프로젝트를 한 권의 정밀한 심층 인문·경제 매거진 형태로 전면 수록합니다.
세상은 작은 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거대한 구조적 파고가 표면에 파편처럼 나타날 뿐입니다. 이번 방송은 차영주 와이즈경제연구소장의 날카로운 거시경제 지정학을 시작으로, 신동호 시인과 양다솔 작가가 파헤친 법과 인간 소외의 부조리, 그리고 배우 문성근이 회고하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종횡무진 관통합니다. 자본, 법치,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확장해 나가는지 그 치열한 기록을 공개합니다.
프랑스 국가부도 공포와 '재정의 덫' • 거리로 쏟아진 라 마르세예즈
유로존 2위의 경제 대국이자 문화·관광의 절대적 상징인 프랑스가 전례 없는 재정 파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수도 파리를 비롯한 전역에서 교육 환경 개선과 재정 확충을 요구하는 학생·시민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청과 국가 지정 역사 건축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백화점이 약탈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분노한 군중은 프랑스 혁명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부의 긴축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와이즈경제연구소 차영주 소장은 이 위기의 본질을 ‘국가 부채의 악순환’과 ‘재정의 덫’으로 규정합니다. 2026년 2분기 말 기준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무려 3조 5,900억 유로를 돌파하며 GDP 대비 119%까지 치솟았습니다. 불과 한 분기 만에 1.5%p가 급증한 규모입니다. 유럽연합(EU)의 재정 건전성 기준(GDP 대비 3% 이하)을 압도적으로 초과한 재정적자율은 현재 5.1%에 달하며, 2027년에는 5.7%까지 폭등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문제는 프랑스 정부가 지출을 줄일 수도, 세금을 늘릴 수도 없는 완전한 사면초가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첫 번째 족쇄는 초고령화로 인한 연금과 복지 비용입니다. 일례로 프랑스 교육부 전체 예산의 약 3분의 1이 실제 학교 현장이 아닌 ‘퇴직 공무원 연금’으로 자동 지출되고 있습니다. 정작 학교는 에어컨도 설치되지 않은 낡은 교실, 살인적인 과밀학급, 교사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학생들이 요구하는 100억 유로 증액에 대해 정부는 고작 12억 유로(10분의 1 수준)만 편성할 수 있을 정도로 금고가 메말라 있습니다.
두 번째 족쇄는 프랑스 시민 사회 특유의 강력한 저항성입니다. 왕정을 시민 시위로 무너뜨린 유일한 역사적 자부심으로 인해, 정부가 공공 지출을 삭감하려 할 때마다 시민들은 총파업과 거리 투쟁으로 답하며 이를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고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무차별적으로 확대했던 재정 지출의 관성이 굳어진 상태에서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고 더 높은 시중 금리로 차환 발행(리볼빙)을 거듭해야 하는 프랑스는 이자가 이자를 낳는 잔혹한 신용 위기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 천문학적 부채: 3조 5,900억 유로 (GDP 대비 119%, 1분기 만에 1.5%p 폭증)
- 예산 배분의 왜곡: 교육 예산 33%가 퇴직자 연금으로 소진 → 공공 교육 인프라 파탄
- 국채 금리 리스크: 신뢰도 하락에 따른 국채 금리 급등 → 국가 채권 차환 발행(리볼빙) 비용 눈덩이
트럼프의 70조 알래스카 LNG 압박 •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미국의 속셈
미국 백악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향해 총 540억 달러(한화 약 70조 원) 규모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투자를 거듭 압박하고 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한국 기업의 자본 참여를 기정사실로 못 박는 발언을 쏟아내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상업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과연 알래스카는 한국 경제의 미래 에너지 보고일까요, 아니면 위험천만한 자본의 수렁일까요?
차영주 소장은 이 사업의 물리적 한계를 날카롭게 파헤칩니다. 알래스카 북부의 가스전을 태평양 연안 남부 항구로 수송하기 위해서는 장장 1,300km(서울-부산 거리의 3배 이상)에 달하는 초대형 파이프라인을 부설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사 구간 대부분은 여름이면 땅이 진흙탕으로 녹아내려 중장비가 진입조차 못 하는 영구동토층(Permafrost)입니다. 오직 얼음이 돌처럼 단단해지는 겨울철에만 불도저로 눈을 밀며 얼음 도로(Ice Road)를 만들어 목숨을 걸고 시공해야 합니다. 공사비와 물류비, 환경 리스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자본의 속성에 있습니다.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같은 세계 최고의 미국 에너지 메이저 기업들이 왜 이 알래스카 가스관에 뛰어들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돈이 되는 황금 사업이라면 미국 민간 자본이 벌써 독점했을 것입니다. 결국 민간 기업조차 감당하기 힘든 천문학적 리스크와 낮은 경제성을 동맹국인 한국의 세금과 자본을 끌어들여 메우려는 전형적인 ‘손 안 대고 코 풀기’ 식 위험 전가 전략인 셈입니다.
트럼프의 노림수는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다가온 선거를 앞두고 미국 유권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휘발유 가격을 낮추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알래스카 현역 공화당 상원의원(댄 설리번)의 지지율을 끌어올려 표심을 결집하려는 포석입니다. 동시에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서 한국, 일본, 동남아로 이어지는 아시아 판로를 독점해 러시아 에너지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계산입니다. 만약 한국이 사업성 결여로 투자를 최종 거부할 경우, 통상 관세 인상 등 트럼프 특유의 보복성 압박이 뒤따를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정부가 마주한 가장 위태로운 줄타기입니다.
美-러 비밀 경유 거래의 모순 • 우크라이나의 절규와 푸틴의 미소
국제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또 하나의 사건은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및 경유(디젤)를 전격적으로 수입·유통하기로 합의하고 대러 경제 제재를 일부 완화했다는 소식입니다. 초기 30만 톤 수입을 시작으로 최대 225만 톤 규모의 러시아산 에너지를 시장에 풀겠다는 구상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완벽히 차단하겠다며 동맹국들을 규합해 고강도 금수 조치를 이끌어왔던 미국의 공식 노선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극단적 모순입니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자국 내 치솟는 디젤 및 휘발유 선물 가격의 안정입니다. 실제로 거래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미국 디젤 선물 가격은 장중 5% 안팎으로 급락했습니다. 그러나 225만 톤이라는 수량은 미국의 하루 반 치 원유 수출량에 불과합니다. 공급량 자체보다는 ‘트럼프가 시장과 유권자에게 보내는 강력한 정치적 시그널’인 것입니다.
이 이면에는 우크라이나와의 미묘한 갈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 시설을 드론으로 정밀 타격하여 국제 유가를 자극하자, 유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던 트럼프 행정부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젤렌스키가 통제를 벗어나자 러시아산 원유를 전격 개방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길들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제재 완화라는 미끼를 던져 평화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나 정작 판의 주도권을 쥔 것은 푸틴입니다. 러시아 재정의 핵심 명줄인 에너지 수출길이 스스로 열린 상황에서 푸틴은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국제 사회는 "미국의 국내 선거용 물가 관리를 위해 침략국의 전쟁 자금줄을 공식적으로 열어준 꼴"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며, 정의와 가치 연대에 기초했던 서방 동맹 체제는 트럼프식 실리 거래주의 앞에서 회복하기 힘든 균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동맹 규범과 침략국 제재조차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미국이 스스로 제재의 둑을 허문 이상,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대러·대중 압박 공조를 요구할 도덕적·외교적 명분은 급격히 소멸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테슬라와 4,000만 원짜리 당나귀 • 극단의 2026 모빌리티 디스토피아
인류 문명이 도달한 눈부신 기술적 유토피아와 가장 참혹한 생존의 비극이 2026년 오늘, 같은 지구상에서 믿기 힘든 극단적 대비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스페이스X의 로켓 추진 기술을 융합하여 공중으로 수직 부양해 시속 370km(목표 600km)로 비행하는 컨셉카 차세대 로드스터(Roadster)를 화려하게 공개했습니다. SF 영화 속 상상이 현실의 기계로 박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각, 지중해 연안의 가자지구(Gaza)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운송 수단인 ‘살아있는 당나귀 한 마리’가 무려 4,000만 원(고급 승용차 한 대 값)에 거래되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맹폭으로 도로망과 인프라가 초토화되고 유류 공급이 완벽히 차단된 폐허의 고립 경제(Closed Economy)에서 수레를 끌고 물과 식량을 나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당나귀뿐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를 공산품처럼 수입할 수도, 급조해 번식시킬 수도 없는 봉쇄선 안에서 동물 한 마리의 가치가 첨단 자동차 가격을 추월하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입니다. "전쟁은 문명을 단숨에 석기시대로 되돌린다"는 경구가 하나의 비유가 아닌 눈앞의 생생한 풍경으로 펼쳐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을 나는 테슬라 로드스터의 화려한 비상은 현실 자본시장에서 환호를 받았을까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공개 직후 테슬라의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습니다. 차영주 소장은 이 냉정한 시장 반응의 핵심 변수로 ‘상용화와 보험(Insurance)의 현실 장벽’을 지목합니다.
항공 당국의 비행 승인이나 도심 통제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과연 전 세계 어느 보험사가 공중 추락 위험과 도심 충돌 리스크를 떠안고 이 차량의 보험을 인수하겠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인간형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정과 산업 현장에 안착하기 위한 최종 관문이 제조물 배상책임 보험이듯, 모빌리티의 혁신 역시 보험 체계의 담보 없이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과거 주식시장이 머스크의 거대한 미래 청사진(기대감)만으로 폭발적 랠리를 이어갔다면, 사이버트럭의 저조한 판매 실적(목표 30만 대 대비 7만 대 판매)을 목도한 지금의 투자자들은 "그래서 이 기술이 당장 기업에 얼마의 이익(실적)을 가져다주는가?"를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게 묻고 있습니다.
"로켓 엔진을 달고 하늘을 회전하는 1인승 슈퍼카와, 폐허 속에서 피난 짐을 나르기 위해 4천만 원에 팔리는 당나귀.
2026년 인류의 모빌리티는 진보의 찬가가 아니라, 파편화된 세계의 거대한 부조리를 증명하는 거울이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1부와 2부 해체 • 슬픔의 방식과 부조리한 법정
거시 경제의 지정학적 격변을 지나 문학과 실존의 영역으로 시선을 옮기면, 1942년 출간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영원한 고전 『이방인(L'Étranger)』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사법 현실과 맞물려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신동호 시인과 양다솔 작가는 이 작품을 단순한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한 청년의 비극’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어머니의 죽음과 연애를 다룬 1부(개인의 실존과 사회적 가면)와 법정 공방을 다룬 2부(제도와 사법 권력의 부조리)로 명확히 분절하여 입체적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부의 포문은 문학사상 가장 충격적인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로 열립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밀크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웠으며, 장례식 바로 다음 날 해변에서 마리를 만나 페르낭델의 코미디 영화를 보고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세속의 도덕률은 뫼르소를 즉각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낙인찍습니다.
그러나 양다솔 작가는 깊은 슬픔에 직면했을 때 인간이 반응하는 양식의 다양성을 증언합니다. 극단적 비극 앞에서는 오히려 침묵하거나, 농담을 던지거나, 멍한 상태로 일상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회는 언제나 ‘피해자다움’과 ‘상주(喪主)다움’이라는 표준화된 눈물과 애도의 연극을 강요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진짜 내면을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적 감정으로 꾸며내기를 거부했을 뿐입니다.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Élisabeth Badinter)가 "모성애는 근대 자본주의가 생산력 유지를 위해 발명해 낸 이데올로기"라 갈파하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가족 규범을 노동력 재생산의 감시 체계로 규명했듯, 뫼르소가 마리에게 건넨 "너를 사랑하지는 않지만 결혼은 할 수 있다"는 메마른 고백은 제도가 규정한 사랑과 소유욕의 허위를 통렬하게 벗겨내는 실존적 행위인 것입니다.
더 끔찍한 파국은 2부의 법정에서 완성됩니다. 뫼르소는 해변에서 햇빛의 작열 속에서 아랍인을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법정의 심판은 살인의 인과관계나 정당방위 여부라는 실체적 진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검사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는 내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패륜아"라며 뫼르소의 도덕적 품성을 난도질하고, 방청객들은 이에 열광하며 사형을 요구합니다. 법정은 살인자를 단죄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관습적 도덕률에 순응하지 않는 ‘이방인’을 제거하기 위해 작동하는 거대한 부조리의 쇼 무대로 전락합니다.
⚖️ 소설 속 결정적 순간 • 검사의 기괴한 논리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한 것으로 기소된 것입니까?"라는 변호인의 절규에 검사는 당당하게 답한다.
"그렇습니다!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 어머니를 매장했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 실체적 범죄 구성요건을 심리해야 할 형사 법정이 개인의 일상적 태도와 감정 표현을 단죄하는 집단 린치의 장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포착함.
사법 권력의 카르텔과 메르소의 소외 • 2026년 글로벌 사법 개혁의 파고
신동호 시인은 뫼르소의 재판 장면에서 문학적 전율을 넘어 오늘날의 사법 현실을 관통하는 가장 잔인한 디테일을 발굴해 냅니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인,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은 휴정 시간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정답게 악수를 나눕니다. 그들은 대립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법조 엘리트라는 견고한 이익 공동체, 즉 ‘그들만의 클럽(Club)’에 소속된 공모자들입니다.
정작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는 피고인 뫼르소는 철저히 배제된 채 구경꾼이자 ‘불청객’으로 전락합니다. 변호인은 뫼르소의 입을 막은 채 자신이 뫼르소인 것처럼 1인칭 "나"를 남발하며 자의적인 변론을 늘어놓고, 판사는 법정에 앉아 있는 피고인을 향해 "당신"이라 부르지 않고 제3자인 "그"라고 지칭합니다. 당사자의 육성은 완벽히 소거된 채 법 기술자들의 전문 용어와 사법적 의전만이 난무하는 이 기괴한 소외 현상은 150년 전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고발하고 프란츠 카프카가 『소송』에서 "법정에서 실질적인 무죄를 입증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절규했던 법의 추악한 민낯과 한 치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동호 시인이 제시한 데이터는 이 문학적 비극이 왜 2026년 전 세계의 핵심 화두인지를 명징하게 실증합니다. ‘세계사법정의프로젝트(WJP)’가 발표한 2025~2026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조사업체 국가의 68%에서 법치주의 지수가 심각하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더 이상 사법부와 검찰을 정의의 수호자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이에 따라 지구촌 곳곳에서 사법 카르텔을 부수기 위한 전례 없는 실험들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사법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2025년부터 880명이 넘는 판사 전체를 국민 직선 투표로 선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완전히 단절 분리하는 사법 체계를 정착시켰으며, 미국은 종신제인 연방 대법관에 임기제를 도입하고 강력한 윤리 규범을 법제화하는 논쟁에 돌입했습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검찰 개혁과 전관예우 타파, 사법 개혁의 열망 역시 국지적인 정쟁이 아니라, 지난 수백 년간 시민 위에 군림해 온 ‘사법 권력의 카르텔’을 민주주의의 통제 아래 되돌려 놓으려는 거대한 문명사적 조류인 것입니다.
🌐 2026 글로벌 사법 개혁의 구조적 격변 현황
문성근이 증언하는 늦봄 문익환 목사 • 상금 1억 원 무대 대본 공모와 역사의 부활
프로그램의 피날레는 40여 년간 한국 연극과 스크린을 지켜온 거목, 배우 문성근의 뜨거운 육성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한국 현대사의 거인인 늦봄 문익환(文益煥, 1918~1994) 목사의 전 생애와 사상을 무대 예술로 영구히 남기기 위한 ‘문익환 창작 희곡 공모전(총상금 1억 원)’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영화감독 이창동이 심사위원장을 맡고 도서출판 문학동네가 공식 출판 협업으로 함께하는 이 거대한 문화적 부활 프로젝트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분단과 억압의 시대를 관통한 한 인간의 거대한 내면적 도약을 조명합니다.
문성근 배우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여섯 차례에 걸쳐 10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러야 했던 아버지의 비극적 삶을 회고했습니다. 생애 마지막 17년 중 10년 이상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문익환 목사.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후에도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수감의 원인이었던 ‘분단 극복과 조국 평화통일’의 꿈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역사 교과서에서 통째로 삭제되는 등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억압당하고 있습니다. 문성근은 "정권이 바뀌면 교과서에서 지워버릴 수 있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영원히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시대를 건너가는 무대 대본을 세상에 헌정하는 것이 아들이자 배우로서 나의 마지막 의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들려준 가족사적 비화는 문익환이라는 인물의 심오한 입체성을 드러냅니다. 청년 시절 윤동주 시인의 비극적 죽음을 가슴에 묻은 채, 1968년부터 1976년까지 가톨릭과 개신교가 사상 처음으로 함께한 ‘공동 구약성서 번역’이라는 필생의 신학적 대업을 완수하기 위해 그는 사회 참여를 억누르며 은둔자처럼 살았습니다. 한신대 교수 시절의 별명은 1분만 늦어도 리포트를 받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다 하여 ‘문이 쾅’이었을 정도로 신경질적이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으로 첫 투옥을 겪은 후, 그는 기적처럼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옥중 서신에서 그는 "처음에는 죄수들을 위에서 불쌍히 내려다보았으나, 그들이 사회 구조적 모순의 희생양임을 깨닫고 눈을 맞추었을 때 비로소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가슴을 울려 나의 기도가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타고난 천성은 바뀌지 않기에 인간은 성격 때문에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고 했으나, 문익환은 역사와 민중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타고난 에고를 부수고 광활한 ‘시대의 큰 광대’이자 민중의 벗으로 스스로를 변혁해 낸 드문 영혼이었습니다.
1987년 7월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26명 민주열사의 이름을 피를 토하듯 목놓아 불렀던 사자후, 1989년 평양 방문으로 국가보안법 재판정에 섰을 때 90세 노모(김신묵 여사)가 70세 아들을 향해 "익환아!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듯 당당하게 재판받아라!"고 호통치던 전율의 순간, 그리고 90년대 초 노동자 집회에 헐떡이며 달려와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지는 것이니 부부끼리 뜨겁게 사랑하라"며 삶과 생명을 긍정하던 파격적인 면모까지—이번 공모전은 이 거대한 실존의 드라마를 무대 위에 복원해 낼 전문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총 상 금: | 총 1억 원 (1편 또는 2편 선정) |
| 심 사 위 원 장: | 이창동 영화감독 |
| 협 력 출 판: | 도서출판 문학동네 (최종심 진출작 단행본 출간) |
| 응 모 자 격: | 기성 및 신인 작가 불문, 가명 투고 가능 (무대화 가능한 대본) |
| 접 수 방 식: | 수시 접수 가능 • 최종 마감: 2027년 12월 31일 (약 14개월간의 충분한 집필 기간 부여) |
| 사전 자료 모임: | 12월 19일 오후 2시 노무현시민센터 <문익환 더 깊이 알기> 질의응답 (페이스북 생중계 병행) |
탁현민의 더 뷰티풀 202회 전체 실황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차영주 소장의 거시경제 브리핑, 신동호·양다솔 작가의 카뮈 북토크, 문성근 배우의 회고 인터뷰를 영상으로 확인해 보세요.
유튜브 풀영상 시청하기 →EPILOGUE • 진실보다 태도가 강요되는 시대를 건너며
오늘 우리가 함께 짚어본 프랑스의 재정 위기, 트럼프의 알래스카 및 대러시아 에너지 셈법, 허공을 가르는 슈퍼카와 가자지구의 4천만 원짜리 당나귀, 그리고 법정에서 난도질당한 뫼르소의 침묵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은 진실에는 무관심하며, 오직 자신들의 지배 질서와 이익, 그리고 관습화된 태도만을 강요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굳건한 부조리의 철옹성 속에서도 문익환 목사는 낡은 자신을 깨뜨려 타자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예술가들은 법조 카르텔의 위선에 맞서 진실의 언어를 기록해 왔습니다. 불확실성과 냉혹한 거래주의가 지배하는 2026년의 가을, 우리는 과연 어떤 시선으로 세계의 본질을 응시하고 어떤 실존적 태도로 오늘을 살아낼 것인가. 이번 방송이 우리 모두에게 묵직한 지적 화두를 남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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